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터 폰 브라우히치 (문단 편집) ==== 나치즘 교육 및 학살 관여 ==== [include(틀:상세 내용, 문서명=독일 국방군의 홀로코스트 관여)] 1939년 브라우히치는 해군의 [[에리히 레더]] 및 공군의 [[괴링]]과 함께 나치즘 이론을 장병들에게 교육할 것을 합의했다. 이 결정은 곧바로 국방군 선전국에 수용되어 정훈교육 교재로 만들어졌으며 국방군 장병들에 대한 나치즘 사상교육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. 또한 1941년 3월 브라우히치는 [[바르바로사 작전]] 개시를 약 3달 정도 앞두고 이런 연설을 했다. >모든 병력은 이 투쟁이 민족과 민족 사이의 것이며, 따라서 '''잔인함이 반드시 동반된다'''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. [[http://newspeppermint.com/2015/01/27/m-nazis2/|출처]] 또다른 독일군 원수인 [[게오르크 폰 퀴힐러]]가 "이 전쟁에서 우리는 [[소련]]의 국경을 몇백 km 뒤로 후퇴시키는 정도로 끝내는 게 아니라, 아예 '''소련을 절멸해야 한다'''"고 주장했던 것과 비슷하다. 국방군의 범죄는 상부의 이러한 묵인과 방조, 그리고 극단주의 조장에 힘입어 이루어진 것이었다. 41년 6월에는 바르바로사 작전의 개시로 [[독소전쟁]]이 개막했고, 브라우히치는 여기서도 독일군을 성공적으로 지휘하며 [[소련군]]을 초기 대승에 공헌한다. 브라우히치는 [[우크라이나]]에 세워진 독일의 괴뢰정부의 수반이 되었고, 여기서 폴란드 일대에서 벌어지는 [[무장친위대]]와 국방군의 학살 행위를 조장하거나 묵인했다. 반대하는 장교들에게는 따를 것을 강요했다. 특히 중부집단군 후방 지역이 친위대 및 질서경찰들과[* 이때 친위대와 경찰 대표로 나온 이들이 바로 [[헤르만 페겔라인]]과 [[에리히 폰 뎀 바흐-첼레프스키]]였다.] 모길료프 회의를 열어 민간인 학살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을 마련하자 브라우히치는 이를 크게 치하하며 다른 부대들에 배포하도록 독려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